한국영어영문학연구소맥타가트도서관 · 충주 동량면

토종 학생의 영어공부: 원서읽은 만큼 독해력향상

관리자 2009-05-26 18:44:52 / 119.193.62.44



“학원 도움 없이 유학에 성공했어요.” 어학 연수나 유학, 고액 과외, 해외 캠프는 남의 얘기다. 학원도 고교생활 내내 다니지 않았다. 사교육비 들이지 않고 유학길에 오른 ‘효자’ 손원빈(19·한영외고 졸업)군 이야기다. 손군은 인문·교양(Liberal Arts) 분야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스워스모어(Swarthmore) 대학에 최근 합격했다. 그는 “단기적인 학습법에 흔들리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은 게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구해 온 디즈니 비디오

손군이 영어에 재미를 붙인 건 어렸을 적 어머니가 구해 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보면서다. 엄마 무릎에 앉아 같은 것을 보고 또 봤다. 이후엔 영어 그림책에도 푹 빠졌다. 어머니 정광원(47·서울 송파구)씨는 “종종 원빈이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책을 사 주위에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읽기를 강요하지는 않되, 주위에 놓아 두고 자연스레 관심이 옮겨 가길 기다렸다는 것. 다만 ‘콩글리시’를 경계해 비영어권 작가가 쓴 책이나 번역된 것보다는 되도록 영어권 원어민이 직접 쓴 책을 위주로 읽게 했다. 이때 시작된 손군의 영어 다독(多讀)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책의 종류는 가리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손군의 집 거실과 방에는 잡다한 책들이 도서관 못지않게 많았다. 이 많은 원서를 사들이려면 비용이 부담되지는 않았을까. 정씨는 “그래도 학원비보다는 훨씬 싸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서점에서 다양한 책을 구비하기 위해 소량씩 보유하다가 오래도록 팔리지 않아 싸게 내놓는 책도 많다”며 “관심을 갖지 않아 그렇지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좋은 책은 많다”고 귀띔했다.

이렇듯 책으로 기초를 충분히 다지는 동안 손군은 ‘문제 풀이’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외고 진학을 결심한 중3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에 돌입했다. 서점에서 ‘외고’라는 말이 들어간 문제집은 대부분 사서 풀었다. 듣기 테이프는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카세트로 속도를 빠르게 해서 들었다. 또 스피커 음질이 고사장마다 다르다는 점에 대비하기 위해 카세트 스피커를 머그컵 안쪽으로 향하게 놓은 뒤 울려 나오는 소리로 듣기 연습을 꾸준히 했다. 중학 내신 35%에 창의사고력도 신통치 않았던 손군이 믿은 건 영어 실력뿐이었고, 한영외고 합격으로 영어 학습의 방향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가졌다.

외고 진학 후에도 손군은 시험 기간에조차 책과 영어 신문·잡지 등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정씨도 마음이 다급할 법했지만 아들을 믿고 지켜봐 주었다. 정씨는 “당장 성과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원래 한번 정한 학원·공부 방법을 잘 안 바꾸는 성격이라 내버려 두었다”고 말했다.

손군이 책을 읽는 방식은 ‘오감으로 받아들이기’다. 메모·그림·접기 등을 서슴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도표를 여백에 다시 그려 보기도 하고 지도에 민족의 이동 등을 표시해 둔다. 주요 내용은 요약해 적어 놓기도 한다. 손군은 “‘낙서’가 가득한 책은 온전한 내 것이 된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수업 교재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과제로 내주는 책,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 같아도 요약본만 읽고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학원에서 나눠 주는 요약본, 만들어진 도표만 외워서는 깊이가 없어요. 직접 표를 채워 나가고 지도를 그려 봐야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내용이 입체적으로 기억돼 시험장에서 ‘긴가민가’하면서 틀리는 일은 거의 없어요.”

원어민 교사와 친하게 지낸 것도 비결

책 읽기와 함께 손군의 또 다른 영어 학습 비결은 원어민 교사와 친하게 지내는 것. 초등학교 때 잠시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친해진 외국인 강사와는 지금까지 e-메일을 주고받을 정도다.

그는 당시 영어를 좋아하는 손군을 위해 미군부대 장병 자녀들을 위해 발행되는 신문을 매번 구해다 주었다. 신문을 읽고 외국인 강사와 ‘수다’를 떠는 사이 손군의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고교 진학 후에도 손군은 유학반 담당 원어민 교사를 수시로 찾아갔다. 다른 학생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학교 밖에서 바쁠 때였다. 덕분에 시간이 많이 남는 원어민 교사를 손군은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에세이 첨삭을 받고, 진로·학습 상담을 받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원어민 교사도 그런 손군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원어민 선생님의 말이, 제가 쓴 글은 학원에서 가르쳐 주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아니라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물어보고 싶게끔 만드는 글이라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손군은 AP·SAT 등 시험 준비도 원어민 교사의 방과 후 수업을 충분히 활용했다.

앞으로 평화·분쟁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손군은 “중동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로스쿨을 거쳐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손군의 꿈이다. 이를 위해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문학 분야로 유명한 스워스모어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선 잘 알지 못하는 학교다 보니 쉽지가 않아 조금 고민이에요. 하지만 이번에도 제 노력이 통할 거라고 믿어요. 유학이나 연수 없이도 합격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지 않겠어요?” 자신이 선택한 길을 자신의 방식대로 묵묵히 걸어가는 손군의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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